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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백제문화유산 여행기 - 8학년 ㄱㅎㅈ

사실 부여라는 동네는 다른 지역에 비해서 생소한 느낌이 있었다. 경주를 떠올리면 첨성대, 불국사, 안압지등 유명한 유적지들이 떠오른다. 반면 부여는? 기껏해야 미륵사 정도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부여를 방문하기 전까진 미륵사도 이름만 알고 있을 뿐 자세히는 몰랐다. 하지만 이번 수학여행을 통해서 그 지역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

첫째날

일찍이라고는 할 수 없는 시간대인 8시 30분. 우리는 서일교회에 모여서 짐 정리와 사진을 간단히 찍고 9시에 출발했다. 벌써부터 수학여행으로 설레는 친구들이 많았다. 버스 내부는(어느 관광버스가 그렇듯이) 편안했다. 푹신한 의자에 몸을 기대고 뒤로 젖히면 정말 10분안에 잠이 든다. 마법이다. 출발하고 잠에서 깨니 어느새 버스는 행담도휴게소에 와 있었다. 이곳에서 점심을 해결할 예정이었다. 메뉴는 스팸마요덮밥이다. 정말로 맛있었다. 옆의 단비누나와 은결이는 식단 관리 때문에 짜장밥을 먹는데 짜장밥이 물조절이 잘못되어서 밥이 찹쌀떡처럼 쫀득해지는 해프닝이 있었다. 점심을 다 먹고 휴게소에서 오징어 사먹고 옷가게 조금 둘러본뒤 다시 버스에 앉았다. 이번에는 잠들지 않겠노라 선언했지만 결국 30분만에 잠들어 버렸다. 버스가 도착한곳은 서산. 백제의 미소가 느껴지는 동네였다.

서산용현리마애여래삼존상

한국사 공부할 때 백제의 유적으로만 기억한 이름이다. 경주 수학여행 때 부터 느낀 건데 사진으로 보는 것과 직접 가는것은 차이가 있다. 산속에 들어가 계곡소리를 들으며 산을 올라간다. 정말 시원하고 상쾌한 날씨였다. 공기를 크게 들이마시니 내 기분도 시원해진다. 삼존상 입구에 불이문이 있다. 산속 입구를 지키고 있는 작고 귀여운 문이다. 문앞에는 삼존불 관리사무소가 있고 스탬프를 찍을 수 있다. 이때부터 친구들이 몰려가서 여행책자에 스탬프를 찍기 시작했다. 스탬프 찍는 재미가 쏠쏠했다. 불이문을 통과해 가파른 계단을 오르다 보면 어느새 바위에 새겨진 3명의 부처가 각기 다른 웃음으로 우리를 맞이한다. 정말 웃음을 다르게 잘 표현한것 같았다. 그 당시 기술로 어떻게 바위에 정교한 무늬를 새길 수 있었는지도 놀라웠다. 평소 불상들은 절이나 박물관에 갇혀서 딱딱한 표정을 가졌었다면 이 불상은 해가 잘 비치는 산골작에 위치해 있어서 자유로운 미소가 느껴진다. 조별로 삼존상 앞에서 사진을 찍고 단체사진을 찍은뒤 보원사터로 이동하자. 보원사터로 이동하는 길도 평범한 시골길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따뜻하고 시원했다. 옆에 계곡이 있어서 그런가? 신나서 돌아다니는데 친구들 앞에서 보기좋게 미끄러졌다.

보원사터

삼존상에서 나와서 조금 걸어가다 보면 넓은 평지와 함께 보원사터가 모습을 드러낸다. 넓 은 땅 가운데 우둑커니 서있는 불탑을 바라보며 그 고요함에 놀란다말 그대로다. 산속에 이런 절터가 있었다는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넓었다. 넓은 평지 위에 우둑커니 서있는 탑도 자유로워 보였다. 넓은 야외공간을 보면 왠지 뛰어놀고 싶은 느낌이 든다. 절터를 둘러보고 그늘에 앉아서 친구들과 수다떠는 사이에 어린 친구들은 터에 있는 감나무를 보고 신발을 던 져서 따고 있었다. 넓은 평지를 바라보며 앉아있는 기분은 왠지 뿌듯하고 편안했다. 서산이 라는 동네는 별거 없는 시골처럼 보여질 수 있겠지만 시골자연을 만끽하며 햇살을 받고 있는 유적들을 보면 그 시간의 흔적에 평온함, 자유로움이 느껴진다.

숙소 LOTTE RESORT

리조트는 합격. 숙소는 티비가 오래된거 말고는 모두 좋았다. 저녁으로 돈까스를 먹었다. 저 녁 자유시간은 놀이방, 침묵방, 영화방 중에 한 방에서 즐길 수 있다. 나는 그중 놀이방으로 들어갔다. 숙소를 와서 공부하고 있는 찬진이를 보면 정말 이해가 안된다. 놀이방에서는 마 피아 게임, 라이어 게임을 즐겼다. 마피아 게임은 지온이가 음악을 틀어줘서 진짜 게임하는 기분이 들었다. 라이어 게임은 상황 묘사가 가장 즐거웠는데 주제가 반짝 빛나는 별ˮ 이었 다. 이런 상황을 이안이가 설명하는데 우리가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어ˮ 라고 말한게 가장 기 억에 남는다. 백제의 별이 빛나는 밤이었다.

둘째날

아침 일찍 일어나는게 얼마나 힘든건지 어린 친구들은 모르는 것 같다. 정말 일찍 일어나서 조별묵상해야된다고 우리 숙소를 두드리지 않나. 순간 너무 피곤해서 약간의 짜증이 났지만 금세 묵상을 끝내고 조식뷔페를 먹는다. 진짜 너무나도 맛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음식 은 연어, 학센, 베트남 쌀국수였다. 이런 뷔페 음식을 저녁에도 맛보고 싶었다.

공산성

“공주 시내에 들어서면 마치 동네를 지키고 있는듯한 성이 나타난다. 성의 돌담은 도시와 자 연의 경계가 되어준다. 성 안으로 들어가면, 백제 왕들이 왜 성에서 거닐었는지 알려주는 멋 진 산책길이 있다.ˮ 처음엔 단순히 옛 성일거라고 생각했지만 걸음을 옮길수록 울창한 가로 수 사이로 성벽 길이 펼쳐졌다. 그 길은 마치 산속을 거니는 듯 고요하고 평화로운 느낌을 주 었다.성문은 카메라를 자동으로 켜게 만들 만큼 인상적이다. 성벽을 따라 걷다보면 성의 남 문인 진남루에 도착한다. 높은 성벽에는 울타리가 없어 아찔하다. 하지만 어린 친구들은 무
서움이 뭐냐는듯 뛰어다니며 기분좋은 웃음을 남긴다. 진남루를 포함해 성의 주요 구조물인 공북루, 만하루, 영은사를 보면 성 안에 또다른 마을이 있었다는게 실감된다. 성을 돌아다닌 뒤 성 입구에서 사진을 찍었다. 적을 방어하기 위해 굳게 닫혔던 성벽이 지금은 관광객들을 향해 활짝 열려 있다.

송산리고분군

송산리 고분군을 둘러보기 전에, 무덤에 대한 얘기를 잠깐 하자면, 송산리 고분군에는 총 7개 의 무덤이 있는데 그중 5개는 백제의 대표적 무덤 양식인 굴식 돌방무덤이다. 굴식 돌방무덤 은 돌을 깎거나 쌓아서 방을 만들고 위에 흙을 덮은 뒤 한쪽에 통로를 만들어 놓은 형식이다. 반면, 6호분과 무령왕릉은 당시 중국에서 널리 유행하던 양식인 벽돌무덤이다. 벽돌무덤은 말 그대로 벽돌을 일정한 양식으로 쌓은 무덤이다. 무령왕릉은 벽돌로 아치를 만들어 쌓은 아치형 벽돌무덤이다.
백제 역사상 유일하게 주인이 발견된 무덤이자 도굴되지 않고 보존된 무덤인 무령왕릉의 발 견이 기적으로 불리는 이유가 백제의 왕릉은 신라와 달리 무덤에 입구가 있어 도굴되기 쉬운 구조였기 때문이다. 보수공사를 하던 중에 우연히 발견되었다고 한다. 박물관에 있는 무령왕 릉 구조를 들어가 보니까 정말 엄숙해진다. 아치형 벽돌에 새겨져 있는 무늬들과 은은한 빛 이 조화되어서 수백년동안 무령왕릉이 잠들어 있었던게 실감된다. 그곳의 유물들은 잘 보존 되어 있었는데 이는 무령왕릉이 얼마나 유물들을 잘 품고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곰나루

“연미산(燕尾⼭)의 어느 굴에 살던 어느 암곰이 나무하러 갔던 사내를 납치해 그와 새끼까지 낳고 잘 살았다. 그런데 어느날 그 사내가 틈을 타서 탈출했다. 그는 그 곰과 새끼의 애원을 외면하며 강을 건넜다. 그것을 보고 있던 곰과 새끼는 강에 빠져 죽었다. 이후 사람들은 사내 가 건너온 나루를 고마나루라고 부른다.ˮ -한국민속대백과사전
별거 아닌 산책로 처럼 보여도 사실은 이런 슬픈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산책로를 둘러볼 시간 도 없이 빠르게 사진찍고 나왔다. 거대한 산이 맞은편 강가에서 우리를 마주보는 모습에 압 도되었다.

공주박물관

공주밥상이라는 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한 뒤 우리는 공주박물관에 갔다. 백제 수학여행 코스 는 지역별로 나뉜다. 그리고 각 지역마다 박물관이 존재하는데 가장 첫번째로 간 박물관이 공주의 박물관인 공주박물관이다. 공주박물관 바로 앞에 곰과 강아지를 섞은 모습의 동물의 석상이 있다. 이 동물은 백제 무령왕릉 발굴 당시 무덤을 지키고 있던 진묘수이다. 진묘수는 무덤 앞에 놓아 악귀를 쫓고 죽은 자를 지킨다는 중국의 묘장 풍습에서 유래되었다. 발굴 당 시 진묘수는 다리가 부러져 있었는데 이는 그 당시 백제사람들이 진묘수가 도망가지 않고 무 덤을 잘 지켰으면 하는 마음에 일부로 부러뜨린 것이다. 송산리 고분군은 무령왕릉을 제외하 면 대부분 도굴된 상태였다. 무령왕릉이 도굴되지 않았던 것도 어쩌면 진묘수가 그 역할을 잘 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다른 나라의 진묘수는 굉장히 강해보이고 무섭게 생 겼는데 공주의 진묘수는 왠지 따뜻해보인다. 눈이 올망졸망하고 입을 헤벌레 벌리고 있는 것 이 마치 맛있는 음식을 먹고 기분이 좋아 노래를 흥얼거리는 듯하다. 이 진묘수는 이제 공주 의 유물들을 지키고 있다.

부여왕릉군(능산리고분군)

사비시대 왕과 귀족들은 죽어서도 좋은 곳에 머물고 싶었던 것 같다. 부여 왕릉군이 그랬다. 부여 왕릉군에 가면 공원을 거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부여군 공식 사이트에서는 중앙 고분 군의 입지는 전통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명당지세(地勢)와 잘 일치되고 있어 백제 당시에 이 미 풍수지리사상이 있었을 가능성을 엿보이고 있다고 설명한다. 매우 조용했고 아이들의 웃 음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 넓은 잔디를 뛰어다니고 나무 사이를 산책하다 보면 신선한 공기 가 마음의 더위를 식힌다.

부소산성

마지막으로 간 장소는 부소산성이다. 늦은 오후. 우리는 백제 황혼의 상징이자 최후의 보루 부소산을 올랐다. 마지막 코스라 그런지 모두 지쳐 있었지만 친구들과 함께 오르니 힘이 났 다. 사비시대 백제의 중요한 산성이었던 부소산성은 그 역할만큼 의미있는 유적이었지만 시 간이 부족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낙화암만 둘러보는것으로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 낙화암 에는 곰나루 못지 않게 슬픈 이야기가 전해진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나당 연합군의 수륙양면 공격으로 백제 궁녀들이 굴욕을 면치 못할 것을 알고 치마를 뒤집어쓰고 백마강(금강)으로 몸을 던졌다는 이야기다. 그녀들이 몸을 던진 곳이 바로 낙화암이다. 훗날 꽃이 떨어지는 모 습에 비유하여 낙화암이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어느세 낙화암에 도착하면 탁 트인 경치와 반 짝이며 흐르는 백마강을 볼 수 있다. 백마강을 배타고 투어하는 관광객들에게 인사한 뒤 우 리는 하산했다. 하산하면서 우리는 즐겁게 떠들고 웃으며 내려왔지만 당시 백제는 그렇지 못 했으리라.

숙소

저녁식사 후 오랜만에 고학년이 온전히 한 방에 모였다. 무언가 진지한 얘기를 하거나 공부 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가 집중해서 한 일은 물병세우기. 모인 맴버에 비해서 하는 놀 이는 매우 단순하고 유치하다. 아무리 재미없는 일이라도 같이하면 즐길 수 있게 된다. 규칙은 간단하다 돌아가면서 물병을 세우고 물병을 세운 사람이 실패한 사람의 이마에 알밤을 때 린다. 그 놀이를 무려 1시간 동안 했다. 이마가 얼얼하고 목은 다 쉴거 같다. 우리학교의 고학 년들은 물병을 세우는 재미만으로 여행의 피로를 씻을 수 있다.

셋째날

궁남지

갔던 장소 중에서 가장 풍경이 좋았던 곳을 뽑자면 궁남지가 무조건 들어갈것 같다. 큰 연못 가운데 위치한 정자는 진짜 그림같다. 잉어, 거북이, 오리, 황새들도 이 멋진 호수가 인공연못 이라는것을 눈치채지 못한다. 그렇다. 궁남지는 신라의 안압지보다 무려 40년 먼저 만들어 진 인공 정원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백제 무왕 시기에 궁궐 남쪽에 연못을 팠으며 20여리 나 되는 긴 수로를 통해 물을 끌여들었고 연못 가운데에 방장선산을 상징하는 섬을 만들었다 고 한다. 궁남지에 연꽃이 폈던 때에는 매우 아름다웠다고 한다. 방문했을때는 그 연꽃들이 다 시들어서 칙칙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연못에 있는 포룡정은 변함없이 아름다움을 유지 하고 있다. 궁남지에는 연꽃 말고도 다양한 볼거리들이 있었는데 그중에 다양한 모양으로 조 각된 풀숲들이 눈에 띄었다. 백제의 석탑들을 모방한 조각들과 풀들이 있었다. 이런 작품들 이 곳곳에 있었기 때문에 정원의 느낌이 조금더 살았었던것 같다.

정림사지

정림사지를 갔을때 가장 먼저 눈앞에 보였던 것은 정림사지가 아니라 박물관이었다. 정림사 지 박물관에 가면 정림사지의 복원 모형을 볼 수 있다. 넓은 사찰의 웅장함은 백제의 불교사 랑을 충분히 보여준다. 정림사지박물관엔 영상을 360도로 시청할 수 있게 된 공간이 있다. 우리가 갔을 때는 이미 다른 일행이 그 자리를 다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그 영상 물을 시청하고자 하는 선생님의 의지가 강력했기에 하는 수 없이 바닥에 앉아서라도 볼 수 밖에 없었다. 영상은 어땠냐고? 영상이 전달하고자 했던 것은 한 때 찬란했던 백제와 정림사 지일 것이다. 하지만, 그 애니메이션의 스토리, 더빙, 그래픽은 친구 지온이가 만들어도 저겄 보단 잘 만들겠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이런 영상물로는 도저히 백제를 체험할 수 없었다. 역 시 직접 가보는게 제일 중요한것 같다.
이제 진짜 정림사지를 가보자. 보원사터를 포함해서 모든 절터를 갔을때 빈 공터를 보면 정 말 신기하다. 그 빈 자리를 허전하지 않도록 석탑과 건물 하나가 지키고 있다. 빈공터에 덩그 러니 놓여진 석탑을 보다 보면 외로워 보이면서도 그 세월을 쓸쓸히 지키고 있었다는게 새삼 대단히 느껴진다.

부여박물관

우리가 갔던 곳중에 유난히 북적거렸던 곳이 하나 있다. 바로 부여박물관이다. 그 유명한 금 동대향로를 보기 위해 너도나도 이곳을 방문한다. 금동대향로를 딱 보는 순간 백제 금속 공 예가 얼마나 뛰어났는지 느낄 수 있다. 향로 맨 위에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봉황이 눈에 띈다. 그리고 향로 몸체에는 산들이 4~5겹으로 첩첩산중을 이루고 있으며 호랑이, 새와 같은 여러 동물들이 새겨져 있다. 또한 산신령과 같은 사람들의 모습도 관찰할 수 있다. 금동대향로를 보면서 놀라웠던 점은 당시 백제 사람들이 금동대향로와 같은 섬세하고 복잡한 금속공예를 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박물관을 돌아다니면서 가장 많이 봤던 것은 유물뿐이 아니다. 바로 시끌벅적한 초등학생들이다! 금동대향로를 조용히 구경하고 싶었고 관찰하려 노력했지만 초등학생들이 금동대향로에서 셀카를 찍고 시끄럽게 떠드는 바람에 관람에 방해가 되었던게 아쉬웠다.

만수산무량사

수학여행을 나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단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날씨다. 박물관같은 실내 시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유적은 실외에 위치해있는 특성상 날씨가 궂으면 그 유적을 제대 로 감상하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오늘의 날씨는 최고였다. 덕분에 무량사와 같은 사찰들의 아름다움을 더욱 느낄 수 있었다.
잠비라는 이름의 돈가스집에서 돈까스에 토마트소스를 곁들여 먹었다. 꽤 잘 어울리는 조합 이었다. 맛있게 식사한 뒤 돈까스집 맞은편에 있는 무량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만수산무량 사, 이름부터가 심상치 않다. 만년을 누린다는 만수(萬壽)와 셀수없이 많다는 무량(無量)이 조화롭다. 무량사 극락전에 들어가면 엄청나게 거대한 아미타불 동상을 맞이할 수 있다. 아 미타불은 극락정토를 주재하는 부처로 다른말로 무량수불, 무량광불이라고 한다. 의역하면 무한한 빛과 수명을 가졌다는 뜻이다. 오랫동안 영원했으면 하는 당시 사람들의 염원이 담겨 있다. 화창한 가을 날씨에 적당히 잘부는 바람, 바람에 떨어지는 낙엽들이 우리 얼굴을 스친 다. 마치 극락정토에 들어온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무량사 주위를 산책하다가 조그만 돌탑 에 수북히 쌓여있는 동전들을 보았다. 와 저게 얼마야. 다 가져가도 모르지 않을까 하는 괘씸 한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접었다. 극락정토에 들어가야지.

반교리 돌담길 & 휴휴당

반교리 돌담길에 도착하자마자 감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마을 할머니께서 감을 딸 수 있게 막대기를 빌려주셨다. 덕분에 마을 감나무에서 잘 익은 감들을 딸 수 있었다. 정말 도시로 갈 수록 사람들은 차가워지고 시골로 갈수록 사람들은 따뜻해지는것 같다. 해가 눈부시게 비추 는 늦은 오후, 반교리 돌담길은 너무나도 조용했지만 온기가 가득했다. 휴휴당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면서 고양이 가족들을 만나서 인사도 했다. 이 마을의 돌담들은 제주도와는 달 랐다. 제주도는 구멍이 송송뚫린 현무암이지만 반교리의 돌들은 모두 자연석이다. 옛 이름이 돌팍골이라고 불렸을 만큼 돌이 많이 나는 동네였던 반교리는 그 돌들을 활용해서 멋진 마을담장으로 탈바꿈시켰다. 주어진 자원을 활용해서 마을의 아름다움으로 만들어가는 모습이 참 멋있다.
반교리에서 몇분 걷다 보면 지금은 아무도 없는 휴휴당이 나온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ʼ 의 저자 유홍준이 1년의 시간을 들여 지은 집이다. 말 그대로 쉬고 가기 위한 집이다. 지금은 관 리를 하지 않아 잡초가 자라고 먼지가 쌓였지만 정자에 누워서 눈을 감으니 잠이 들것만 같 았다.

대조사

전설에 의하면 한 나이가 많은 승려가 한마리의 큰 새가 바위 위에 앉아있는 것을 보고 깜박 잠이 들었는데, 깨어나 보니 어느새 그 바위가 석조 미륵보살상으로 변하여 있었기에 이 절 을 대조사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여느 절처럼 산속에 조용히 위치해 있는 대조사는 그 모습도 평범하다. 하지만 석조 미륵보살이 있는 곳으로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햇살을 가득 받고 있는 산을 볼 수 있다. 여담으로 미동도 없이 서서 무표정을 짓고 있는 석조미륵보살이 진서를 너무나도 빼닮아서 웃겼다.

숙소

길고 많은 일정을 마치고 숙소에 도착했다. 마지막날은 밤을 샌다. 기정사실이다. 우리는 이 마지막 날을 위해서 편의점에 몰래가서 라면과 과자를 사왔다. 그리고 나, 찬진이, 지온이, 은 결이, 하원이, 이하진형, 그리고 연우형이 한방에 모였다. 같이 한 방에서 서로 놀고 영화도 보니 몇배는 더 재밌었다. 편의점에서 몰래 사온 라면, 과자, 팝콘, 젤리같은 누구나 좋아하는 간식거리를 들고 넷플릭스를 시청했다. 찬진이가 끓여준 라면은 꼬들꼬들한 면발에 칼칼한 국물까지 최고였다. 재밌게 대화하고 장난치고 웃고 떠드니 어느새 시간은 5시 30분. 눈이 계속 감겼다. 억지를 세수를 하고 뛰어다녔지만 잠이란 녀석은 끈질기게 내 눈커풀을 닫으려 했다. 버티고 버텼지만, 결국 밤을 새려 했던 나의 목표는 5시 30분에 막을 내렸다.

마지막날

일어나니 몸이 무거웠다. 어제 너무 무리한듯 싶다. 피곤한 몸을 일으키고 후다닥 준비를 끝 낸 뒤 로비에 나왔다. 3박 4일동안 우리와 함께했던 롯데리조트를 나온다. 여행 숙소 마지막 체크아웃은 매번 아쉽다. 로비에서 일정을 시작하기 전에 버스 짝궁을 정했다. 하나님은 제 발 뒷자리에 앉게 해주세요라는 내 말을 무시하고 앞자리에 앉히셨다. 첫날을 제외하면 모두 앞자리다. 아무렴 어떤가. 버스에서 잔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마지막날 날씨는 그렇게 좋지 않았다. 비가 온뒤 촉촉하게 젖어있는 바닥과 구름낀 하늘때문에 몸이 더 피곤하고 무 거웠다. 몸을 이끌고 가람생가에 도착했다.

가람생가

그냥 큰 초가집이다. 비오는 날에도 이곳에서는 무슨 행사를 준비하는 듯 싶다. 수학여행 출 발 전부터 가람생가 앞에서 같이 부르기로했던 가람 이병기 선생의 시가 담긴 노래 ‘별ʼ 을 불 렀다.
이병기
바람이 서늘도 하여 뜰 앞에 나섰더니
서산머리에 하늘은 구름을 벗어나고
산뜻한 초사흘달이 별과 함께 나오더라
달은 넘어 가고 별만 서로 반짝인다
저 별은 뉘 별이며 내 별 또 어느 게요
잠자코 호올로 서서 별을 헤어 보노라

익산미륵사지 & 익산박물관

비오는 날에 하얀 우비들이 익산 미륵사지를 방문한다. 그곳에는 하얀 미륵사지 석탑이 있 다. 지금까지 갔었던 사찰, 절터들은 모두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미륵사 지에는 거대한 평지에 그렇지 못한 하얗고 매끈한 석탑이 우두커니 서있었다. 백제를 대표하 는 유적인 미륵사지를 기대하고 갔지만 인위적인 석탑의 모양이 약간 아쉬웠다. 주변과의 조 화를 이루는것도 아름다움을 가꾸는 하나의 방법이라는 것을 미륵사지를 보고 깨닫는다. 익 산박물관은 여느 박물관처럼 여러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하지만 피곤해서 얼마 안 돌아 보고 휴게실에 누워 있었다.

집으로

점심은 원광대학교 구내식당에서 먹게 되었다. 짬짜면을 먹었는데 양이 살짝 아쉬웠다. 대학 교 캠퍼스는 하나의 작은 도시같다. 늘 갈때마다 신기하고 재밌어보인다. 대학교에 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나도 저렇게 다니고 싶다는 기대감과 설렘이 들기도 한다.
버스에서는 맨 앞에 TV가 있어서 긴 거리를 이동해야 될때면 TV를 시청했다. 하지만 그 TV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 잠을 못잘 때가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 날에는 TV소리도 나의 잠을 방해 할 수는 없었다. 버스에서 눈을 감았다 떴는데 벌써 도착해 있었다. 순식간에 수학여행 이 끝난게 실감되지 않았다. 정말 아쉬웠다. 사진이라도 더 찍을걸 그랬다. 도착지에 미리 기 다리고 계셨던 부모님들이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드는 것을 보자 이제야 실감됬다. 도착했구나.

평가

수학(修學) 여행이란 학교에서 학습 활동의 일환으로 관광지를 여행하는 것을 말한다. 이제 까지의 수학여행은 나에게 좋은 경험은 많이 남겨줬어도 배움을 남기진 못했다. 하지만 이번 수학여행은 여행중에도 배울 수 있었고 끝나고 여행기를 작성하면서도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다. 백제로 갔었던 수학여행은 백제의 모든 장소 하나하나가 전부 자연 과의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는게 느껴졌다. 또, 좋은 날씨로 인해서 그 지역의 유적지를 더욱 기분좋게 관광할 수 있어서 좋았다. 이렇게 경험을 글로 작성하는 과정을 통해서 수학여행을 다시 되돌아보며 소중한 시간이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