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
얼마나 대단한 미소인지
구경하러 갔다가
계단만 힘겹게 올라갔다
정상 끝 절벽에는
이 곳에 헉헉대며 올라온
나를 비웃는 듯한 백제의 미소가
반겨주었다
커다란 초원 끝에
큰 석탑 하나가
홀로 우뚝 서 있다
절이 없어진 터에
혼자 남아 외로워 보였다
공주
집에서 쫓겨나 새롭게 시작한 백제인들
새로운 곳에서 그들은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어간다
538년, 혼란스러웠던 그때와 다르게
이제는 안정된 듯해 보였다
그 증거로는 그 시대의 유물이
보여주고 있다
부여
금강 따라 아름다운 건물들이 남아있다
절들이 그 시대의 현장을 보여주고
유물들이 그 시대의 교양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지만 찬란했던 백제의 모습도
한순간에 무너졌다
삼천 궁녀가 떨어지듯 그 위엄도 떨어졌다
익산
익산에 살던 한 예술가
가람 이병기 선생님은 별을 노래했고
우리도 같이 별을 노래했다
별 아래 반 쯤 무너진 듯한 석탑이 있다
그 석탑은 본 모양을 잃었지만
오래도록 세상이 바뀌는 것을 지켜보았다
모양을 잃었지만 멋을 잃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